(사랑의 시발자, 듀이)                   

 

 작년 이 맘때즈음해서 학교에 사는 고양이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 올라 화제가 된 고양이가 있다. ‘소식이라는 이름의 고양이로 바로 나의 모교의 고양이이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어디서 왔는지, 누가 이름을 붙여줬는지도 모르지만 우리 과 학생이라면 누구나 그 고양이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어느새 우리의 기억 속에서 흐릿해 졌고 더 이상 아무도 그 고양이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여기에 또 다른 고양이가 있다. 이 고양이의 이름은 '듀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고양이는 인터넷등으로 화제가 되지도 않았지만,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그만의 홈페이지까지 존재한다.
(듀이의 공식홈페이지 www.deweyreadmorebooks.com)

이름만 다를 뿐 분명히 같은 고양이일지인데 어찌 그리 다른 결과를 낳게 되었을까? 


 
혹시 이 책 속의 주인공 듀이란 놈은 다른 고양이들과는 달린 어떤 특별한 재주를 가졌던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어떤 순수혈통의 비싼 고양이일까? 하지만 눈을 씻고 봐도 책에서의 이 도서관 고양이는 그저 흔한 잡종의 특별한 것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고양이 였다.

그런 이 고양이를 비범한 고양이로 만든 것은 무엇일까? 바로 관심이다. 책 속의 듀이란 이 놈은 자기 환경에 관심을 가졌고 주변 사람들에게 친근감을 표시하며 아무런 대가 없이 먼저 다가와 주었다. 물론 그 동물의 성격 탓이라고 치부해버릴 수도 있겠지만, 듀이가 주변에게 보여주었던 그 관심이 바로 사랑의 시작이 아닌가 한다. 아무리 보기 좋게 꾸민다고, 혹은 어떤 기묘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것으로 어떤 특정한 일부에게는 어필할 수 있겠지만 대다수의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얻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즉 사랑이라는 것은 어떤 특별한 재주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심지어 언어가 다를지라도 그저 먼저 다가가고 이야기를 들어주며 지긋이 눈을 맞추어 주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포화용액에 어떤 조그마한 심지어 눈에 보이지 않을지라도 시발점(종자결정)만 있다면 그것은 곧 눈에 띄는 크고 아름다운 결정을 만들어 낸다. 듀이의 이런 관심이 사랑의 시발점이 되었을 때 포화 용액역할을 한 것은 사랑이 필요했던 이 마을의 상황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사랑 받고 있는 자는 자기가 사랑을 받고 있는지 자각하지 못한다. 마치 폐에 어떤 질환이 와서 숨을 쉬기 힘들 때가 되어서야 숨쉬는 것을 고맙게 여기는 것처럼 말이다. 자기가 사랑 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우리는 사랑의 중요함을 그것의 필요함을 느낀다. 이 고양이가 반납함에 놓여질 그 무렵 그곳 마을의 경제나 도서관의 상태, 심지어 그 마을의 사람들 대부분이 힘든 시기였다. 만약 그곳이 주인공이 어떤 위기에도 처해있지 않은 상태였더라면 듀이가 사랑의 운반체가 아닌 사랑 그 자체라 하였던들, 듀이란 이름의 이 고양이는 시설보호소에서 안락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사는 것이 힘들고 지칠 때 가장 눈에 뛰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은 아무런 조건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곳의 듀이 역시 그랬다. 그는 먼저 다가가고 먼저 친근감을 표시하였다. 흔히들 기적 같은 사랑의 힘이라고 한다. 하지마 난 사랑과 어울리는 단어로 기적이라는 단어보다는 관심이란 단어를 채택하고 싶다.

 

지금 우리 사회가 바로 이런 사랑의 어떤 매개체가 필요할 때가 아닌가 싶다.

집 밖의 나무의 푸른 잎들이 어느 때보다 이질적으로 느껴질 만큼 춥게 느껴지는 이때 제2, 3의 듀이를 기대해 본다. 그리고 그가 고양이가 아닌 사람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by 자바리 2010. 4. 16.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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